좋아하는 일엔 누구보다도 몰입하는데,
그래도 ADHD일까요?
다섯 살 때부터 아이의 ADHD를 의심했었어요. 그런데 확신의 발목을 잡는 아이의 행동은 바로 '과몰입'이었죠. ADHD인 첫 째 아이 피치는 좋아하는 일, 예를들어 그림책 일기나 그림 그리기, 만들기, 좋아하는 만화영화 보기 등은 누구보다도 집중하는 아이입니다. 한 번 시작하면 한 시간은 기본이였죠.
한창 그림책 읽기에 꽂혔을 때는 세이펜으로 혼자 두 시간 동안 책을 읽은 적이 있을 정도로 흐트러짐없이 집중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나이가 여섯 살이였으니 그 장면만 보면 누구도 ADHD를 의심할 수 없었을 거에요.
좋아하는 일 말고,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
좋아하는 활동은 누구보다 집중하고 몰입하는 아이였기에, 여러가지 의심 증상들 속에서도 확신을 할 수 없더군요. 늘 헷깔리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슬슬 의심이 짙어지는 시기가 왔습니다. 일곱 살 때였죠.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시간에는 참여도가 좋은데 문제는 싫어하는 시간에 너무 집중을 못 한다는 피드백을 받았거든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은 느즈막히 학습을 시작해도 일곱 살에는 시작하는 추세잖아요. 저는 학습은 최대한 때가 되면 시키자는 주의였기때문에 본격적으로 일곱 살 여름 전 한글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해도해도 너무 집중을 못 하더군요.
연필 떨어트리기, 온 몸 비틀기, 다리 떨기, 갑자기 소리 지르기, 돌아다니기, 머리 도리도리하기 등을 반복하며 도무지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부산스러움 그 자체였죠.
ADHD 증상을 살펴볼 때 나이대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좋아하는 일에 대한 집중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정도를 살펴봐야 한다고 합니다.
과몰입을 좋은 방향으로 이용하기
피치는 다섯 살때까지 영상 노출이 거의 없는 아이였습니다. 집에 티비도 없고 따로 유튜브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학습용 디브이디인 호비를 보는게 전부였어요.
여섯 살때부터 영어영상 노출을 시작했습니다. 잔잔한 영상이었지만 하루 30분 정도로 시작했죠. 아이가 영상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도 약속을 하고 정해놓은 규칙은 잘 지키는 아이라 크게 트러블은 없었습니다. 피치는 약간 강박이있는 아이여서 루틴을 만들기까지는 조금 험난하지만 일단 정착이 되면 잘 지키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한창 심해지며 집에 있는 날이 길어지면서 영상을 제한없이 틀어주게 되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맙니다. 이 때부터 심심하다며 영상을 틀어달라 조르는 아이가 되었어요.
영상을 제한없이 보여주면 언제까지 볼까?
영상도 계속 틀어주면 아이가 질려서 안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격리기간 중 포켓몬을 아침부터 그만 본다고 할 때까지 틀어주기로 결심했죠. 결론은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화장실갈 때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 계속 이어 보더군요. 끝내 제가 그만 좀 보라고 하니 12시간을 보고도 더 본다고 했습니다. 이 날 이후로 영상에 대한 제한은 철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ADHD아이들은 영상에 중독이 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ADHD아이라고 해도 스스로 약속한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이 루틴으로 정착되면 잘 지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약물의 효과이기도 하겠지만요.
영상에 과몰입하는 아이를 위한 엄마의 노력, 그리고 작은 결실
영상을 끝없이 보는 것도 ADHD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과몰입 증상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과몰입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잘 관찰하여 그것을 장점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희 집은 웅진북클럽 학습패드와 온라인 영어도서관 '리틀팍스'를 활용하고 있어요. 저희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등교 전에 항상 같은 루틴으로 생활합니다.
우선 웅진북클럽 북패드를 티비와 연결하여 '읽어주는 책 30분 듣기, 그리고 리틀팍스 애니메이션 30분 보기'를 매일 합니다.
영상과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이라 북패드를 보는 것도 만화영화를 보는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잘 보고 있습니다. 물론 재미있는 책을 볼 수 있게끔 미리 골라놓는 엄마의 정성이 조금 들어가긴 합니다만.....루틴이 잡히면 나름 할 만합니다.
리틀팍스는 아이가 좋아하기 때문에 제가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 공들인 시간이 있지요. 어쨌든 영상을 좋아하는 아이라 티비에 연결하여 북패드와 영어 영상보기를 평일 오전마다 1년 째 하고 있는 중입니다.
* 리틀팍스 핫딜 포스팅이지만 ,소개와 후기도 함께 포함되어있어 링크 걸어둡니다. 참고하세요 *
하교한 후에도 1시간 정도 원하는 넥플릭스 영어 만화를 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과거에 영상을 무제한으로 보여주다가 크게 데인 경험이 있어, 고를 수 있는 만화 몇 가지를 제가 먼저 선택한 후 그 안에서 보고싶은 것을 고르게 합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약속한 시간보다 더 보여주지 않습니다. 1시간 동안 동생 브레드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보다 말다 하지만, 피치는 돌부처처럼 앉아 초집중을 하며 만화를 시청합니다.
정리하자면 '오전 북패드 30분, 리틀팍스 30분, 그리고 오후 넥플릭스 영어 만화 1시간' 총 두 시간 동안 엄마의 계획이 들어간 영상을 보면서 본인도 2%부족하지만 나름 만족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폭동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부족한 2%는 주말에 채워줍니다. 영어만화가 아닌 좋아하는 포켓몬 만화나 혹은 다른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1시간~1시간 30분 정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영어는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듣기'수준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듣기만' 잘 합니다. 공식적인 시험을 본 것이 아니라 수치화시켜 말하기는 어렵지만, 웅진북클럽 학습패드의 영어 듣기 시험이나 리틀팍스 퀴즈, 그리고 애니메이션 대사 해석 혹은 그림책 해석을 시켜보았을 때 아웃풋이 꽤 나옵니다. 리틀팍스 3단계 만화는 90프로 이상 알아듣고, 4단계까지는 전부 알아듣진 못해도 편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듣기만' 잘 한다고 강조한 것은 학습이 들어가지 않은 아이라, 읽기는 한 문장 짜리 익숙한 문장만 읽는 수준, 파니스 블렌딩도 잘 되지 않는 영어 까막눈이라서 입니다. 심지어 겨울 방학 때 알파벳을 쓸 줄 아는지 확인해보니, 알파벳도 못씁니다....... 물론 보면 알지만요. 다행인 것은 자신이 영어 듣기는 잘 하다보니 영어를 싫어하지 않아 2주 정도 가르치니 알파벳 쓰기와 파닉스, 쉬운 문장 읽기는 금방 배우네요.
요즘 수준높은 아이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온라인의 엄친아들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아이의 다른 영역의 부족함에 비추어보면 본인 역량에 비해 '영어듣기'만큼은 높은 편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상에 과몰입하는 아이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습에 과몰입하면 참 좋을텐데...보통 게임, 영상 이런 걸 좋아하는 듯 합니다......ㅠㅠ
종종 바뀌는 몰입의 대상
저희 아이가 몰입하는 1순위는 늘 '영상'이지만, 그 외에는 종종 바뀌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동안 스쳐지나간 아이의 애정템들을 이야기해 보자면 그림책 읽기, '미술 관련 활동' 예를들어 그리기, 만들기, 종이접기 등, 혹은 물놀이, 그리고 보드게임, 학습게임 등이 있습니다.
그림책을 좋아했었을 때 더 많이 읽어줬어야 했는데 요즘은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책을 읽자고 하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어 아이가 책을 읽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다행히 지금도 싫어하진 않아 매일 조금씩 읽어주거나 북패드로 보고 있습니다.
한창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가 원 내에서 유행을 했었어요. 그 때 꽂혀서 1년 정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를 하며 노는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그리기에 꽂히면 방 문을 닫고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역할놀이를 하고 놀더라고요.
보드게임은 ADHD 아이들의 사회성 증진에 좋다기에 제가 처음에 시작했는데 재밌었는지 한창 좋아했습니다. 연산도 보드게임을 하다가 많이 늘었죠. 단점은 상호작용하는 놀이라 사람을 엄청 귀찮게 합니다. 하루종일 보드게임을 하자고 하고, 지면 한바탕 난리가 나죠.
요즘엔 학습패드 속 게임에 푹 빠져있는데, 사실 게임이라고 칭하기도 좀 미안한 게임들입니다. 그 게임도 재밌다고 하고 있는 걸 보면 조금 짠해지기도 하네요. 게임이 하고 싶어서 하루 정해진 할 일을 후다닥 끝내고 열심히 플레이 합니다.
피치가 좋아했던 활동들, 아직도 집중하는 활동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해 봤습니다. 저희 아이가 몰입하는 대상에 나름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상과 게임, 물놀이를 제외하고는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좋아하는 활동이란 것입니다. 피치는 관계지향적인 아이라 누군가와 함께 놀고 싶어하는 마음이 큰 편입니다. 현실은 타고난 ADHD 성향으로 인해 관계가 좋게 끝난 적이 없었지만요. 이런 성향을 잘 이용하여 긍정적인 것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아이를 관찰하고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참 어렵지만요.
그래도 한 가지 '물놀이'는 타인과 상관없이 스스로 좋아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유아 때는 목욕탕에서 혼자 두 시간도 놀던 아이였어요. 그래서 8살이 되면서 수영을 배우게 했죠. 결과만 말씀드리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어린이 수영장을 보냈는데 선생님께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워낙 운동신경이 없는 아이지만 1년 정도 하니 이제 접영도 꽤 잘 하네요.
같은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더라도 증상의 종류는 다르다고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정해진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마다 다 다르니까요. 아이에 맞게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면서 이 방법 저 방법, 다 적용해 보는 거죠. 같은 아이라도 어떤 시기에는 통했던 방법이 조금 크면 통하지 않기도 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아이가 어땠는지 엄마인 저도 금세 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틈날 때 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 하루 빨리 전두엽이 쑥쑥 자라길 바라봅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길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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