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의 병원 예약일을 깜빡 잊었습니다. 병원 예약일은 ADHD아이들에게 중요합니다. 이때 약을 받아오기 때문이죠. ADHD약이 집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잠깐 긴장했으나 다행히 다음 날이 주말이라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예약은 사정 상 바로 갈 수가 없어 나흘 후로 잡았습니다.
끊임없이 고민되는 ADHD 약물복용
최근 함께 병원에 다니던 친구가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ADHD약물을 중단했어요. 그 친구의 엄마는 초반에는 아주 힘들어했는데 한 달 반쯤 지나자 그래도 조금 낫다고 하더군요. 아이의 친구는 ADHD약을 1년 이상 복용하면서 가슴에 통증이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저희 아이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틱이 있었고, 콘서타의 부작용으로 특유의 불안, 초조해 보이는 모습을 보였었죠. 그 친구는 약을 끊고 며칠이 지나자 이런 부작용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학습부진과 몸을 가만두지 않는 ADHD의 어쩔 수 없는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고 해요. 가슴 통증이 걱정되어 너무 심해지면 다시 약을 복용하더라도 일단은 중단해 본다고 하시더군요.
피치는 콘서타 복용 후 효과를 크게 본 편이에요. 그래서 약물치료에 대해 반감은 없었지만 6개월 전 주의력검사 결과가 초진 때에 비해 개선되었고,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콘서타를 중단했을 때 생각보다 피치의 상태가 좋았던지라 조만간 약물을 중단해 보고 싶었어요. 심지어 놀이치료 선생님께서도 피치는 약물을 줄이거나 중단해 보는 게 어떠냐고 얼마 전 물어보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참에 나흘동안 모습을 관찰해 보고 약물을 끊는 쪽으로 상의를 해 보려고 결심했습니다.
나흘동안 콘서타 중단 후 관찰기록
1. 생활습관 부분
콘서타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가 '수면문제'라고 합니다. 피치도 콘서타 복용 초반에 각성상태로 잠을 자지 않고 깽판을 치는..... 모습을 보이곤 했죠.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콘서타를 중단하니 늦은 오후부터 살짝 졸려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평소보다 1~2시간 정도 일찍 잠이 들었어요. 일찍 자고 좀 더 푹 자는 듯했습니다. ADHD 약물이 아이의 뇌를 깨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던데 약을 먹지 않을 땐 멍해지는 느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걸 졸리다고 표현하는 듯해요.
또한 평소보다 밥도 잘 먹고 간식도 잘 먹고, 잘 먹는 걸 넘어서 먹는 것도 충동성이나 무절제가 발동하는 건지 엄청 먹어댔습니다. 약물복용 때도 잘 흘리긴 했지만 더 흘리면서 먹고, 자꾸 간식을 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도 평소 하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생활루틴은 그럭저럭 약물복용 시와 비슷하게 잘 수행했습니다. 심지어 주말아침에는 엄마아빠보다 일찍 일어나 그 날 학습의 일부를 혼자 앉아 1/3 정도 해두고 놀고 있었습니다.
식사, 책가방정리, 과제 확인, 학습 루틴, 샤워 등 평소 루틴에 맞게 잘 해 내는 모습을 보니 약물복용과 상관없이 생활습관과 루틴은 잡혀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평소와 다르게 산만해 보이고 더 오래 걸리긴 했습니다.
2. 인간관계 부분
정확히 알긴 어려우나 일단 학교, 학원과 같은 기관에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잘 다녀왔습니다. 주말에 만들기 수업이 있어서 유심히 지켜봤는데 좋아하는 활동이라 그런지 평소처럼 잘 수행했습니다. 이 때는 산만해 보이는 모습도 관찰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콘서타를 복용할 땐 아이가 항상 초조해 보여서 수업시간에도 주눅 들어 보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날은 재밌고 신나게,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더라고요. 선생님들께도 평소와 달리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불안이 많이 잠잠해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기관에선 오히려 긍정적이었으나......
집에서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네요. 동생에게 계속 시비걸기, 엄마에게 장난치며 대들기, 여러 번 말해도 딴소리하기, 혼자 신나서 가족들 못살게 굴며 소리 지르기, 호루라기를 불며 시끄럽게 하기......
나흘동안 집에서 매일 꿀밤을 맞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피치도 나름 사회성이 생겨서 기관에서는 충동성과 산만함을 최대한의 노력으로 참거나 혹은 습관적으로 순응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누울자리 보고 뻗는다고... 집에선 본연의 ADHD에너지를 분출했던 것 같습니다.
3. 학습적인 부분
앞서 말씀드렸듯 학습루틴이 잘 잡혀있는 아이라 웬만큼 모든 학습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피치가 평소에 취약한 부분, 그리고 싫어하는 과목을 학습할 때 온 몸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였어요. 꿈틀거리면서 할 일은 하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죠.
눈에 띄게 거슬렸던 모습은 수학문제를 풀다 한 두 문제 틀리면 평소엔 차분히 다시 풀어보는데 약을 먹지 않을 땐 화를 내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책상을 주먹으로 친다던지, 연필로 책을 반복적으로 콕콕 찍는 등 짜증을 내더군요. 콘서타를 먹고 있을 때도 물론 가끔 잘 안 풀리는 문제가 있거나 너무 하기 싫을 땐 짜증을 내긴 합니다. 그런데 짜증을 내는 방법이 다릅니다. 약물복용 땐 학습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나중에 한다고 하는 등 조금 징징거리는 방식으로 표현을 한다면, 반대로 약물을 복용하지 않을 땐 매우 공격적이고 충동적으로 표현을 했어요. 보고 있자니 저도 대폭발 할 것 같더라고요;;;; 학습 수행 결과는 평소와 비슷하거나 오답이 조금 많은 정도였습니다. 산만하게 공부하던데 의외로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4. 기타
약간의 틱이 있어서 틱 약을 추가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상황이었는데 약물 중단 후 틱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약물이 틱을 유발한 다기보단 콘서타 복용 시 나타나는 불안, 초조 증상이 틱을 심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피치는 유난히 콘서타를 먹을 때 불안해 보여서 이것 때문에 약물 중단을 고민하게 되네요.
또한 제가 콘서타를 복용시키며 가장 아쉬웠던 불안, 초조 증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혼자 신나서 날뛰는 과흥분 상태가 자주 발생해서 문제였죠. 예를 들면 백화점이나 서점에서 뛰거나 장난치지 않는 아이인데 신나서 뛰어다니고 잡기놀이를 하는 등 상황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들입니다. 참 밸러스 맞추기 어렵네요.
5. 요약
ADHD의 전형적인 증상들인 과잉행동, 부주의, 산만함, 충동성 등이 모두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평소의 생활루틴, 학습루틴은 꽤 산만하긴 해도 자발적으로 모두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려운 과제나 오답을 평소보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학습 결과는 약물 복용 전 후 크게 변화가 없었습니다. 기관에서의 모습은 평소와 비슷했지만 가정에서는 지속적으로 트러블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틱과 불안, 초조한 증상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콘서타 중단 상담
작년 11월 풀배터리검사 결과가 초진에 비해 많이 좋아진 상황이었지만 주의력검사(CAT)에서 청각적 주의력이 아직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약물 중단은 조금 이른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약물효과가 좋은 편인 점, 기관 피드백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해서 검사 후에 결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주의력 검사와 뇌파검사 결과가 괜찮다면 약물을 먹지 않은 상태로 다시 한번 주의력검사와 뇌파검사를 한 후 결정하게 될 것 같습니다. 뇌파검사는 처음인데 어떤 식으로 결과가 나오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담당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지금 피치가 다니는 병원에서 피치가 약물치료, 놀이치료 경과가 가장 좋다고 이야기하시는데 그럼에도 아직 약물을 중단하기엔 이른가 봅니다. 선생님 반응으로 봐선 중단을 못 할 것 같지만 그래도 6개월 경과됐으니 검사결과도 볼 겸 겸사겸사 검사해 보려고 해요.
CAT만 검사하면 검사비는 10만 원 초반, 뇌파검사는 5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풀배터리로 검사했을 땐 개인병원인데도 30만 원 초반 정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엄마, 그냥 약 먹으면 안 될까요?
콘서타 중단에 대해 상담하던 중 피치가 끼어들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 그냥 약 먹고 싶어요."
그래서 일단 약을 받아왔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물을 먹고 검사해 보고 결과가 좋다면 그때 약물을 서서히 끊은 후 재검사를 하자고 하셨어요. 아이에게 약을 먹는 게 더 편하냐고 물었습니다.
"약을 안 먹으니까 자꾸 졸리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요. 약을 먹을 때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라고 표현하네요. 느낌이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라 약물 복용 전후차이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뭔가 불편하다는 듯 이야기하더군요.
아이가 약을 먹을 때 더 편안한 무언가가 있긴 한가 봅니다. 수업시간에 얼마나 집중이 되는지, 과제하기가 힘든지 이런 것들을 물어봐도 그냥 평소랑 똑같은데 약을 안 먹으니까 자꾸 졸린 기분이라고만 표현해요. 그러다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며 "머리야, 좀 깨어나봐."라고 하는데......
이제는 약을 복용한 지 1년 반이 넘어가다 보니 아이도 약을 먹는 게 더 편안한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괜히 의존성이 생긴건 아닌지 또 근본없는 걱정을 사서 합니다.
2주 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아이의 상태를 잘 관찰하면서 약물치료를 조절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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